에릭과 제가 각기 점심 이후에 개인 사정이 있는 관계로 10시에서 12시까지 비교적 짧게 모임을 가졌습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작해서 본론으로 들어가다보니 불어로만 주구장창 이야기를 해서, 한국어는 공부를 못했네요. 다음 만남에서 한국어 비중을 조금 더 두어야겠네요.
에릭과 오늘 한 학습은 크게 3가지였습니다.
첫째, 제가 출판사와 번역 관련해서 저작권 의뢰하는 편지를 써 왔는데, 에릭이 멋지게 교정해 줬네요. 먼저 써 간 글이 어찌나 초라해 뵈던지.. Merci Eric.
둘째, 오늘은 음악 관련 이야기가 나와서 음악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가 음악 분야에 문외한이라 에릭이 해 주는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었어요.
셋째, 제 박사 논문 관련 이야기를 했습니다. vulnérabilité(상처입을 수 있음)에 관한 대화였는데, 예술 작품과 문학 작품을 매개로 이 개념을 풍성하게 사유하는 것은 어떤지에 관해 이야기했습니다. 푸치니의 오페라,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 샤갈의 "황색 그리스도"가 좋은 소재로 제시되었네요.
아! 그리고, 영옥씨 매 번 카페 감솨!!!^^
2016년 3월 10일 목요일
번역연습 / 2016.03.08
<영어
원문>
If,
in his conscious thought, he has long since discarded the maxims that
he was taught at his mother’s knee, his sens of sin may be buried
deep in his unconscious, and only emerge when he is drunk or asleep.
Nervertheless it may suffice to take the savor out of everything. At
bottom he still accepts all the prohibitions he was taught in
infancy. Swearing is wicked ; drinking is wicked ; ordinary business
shrewdness is wicked ; above all, sex is wicked. He does not, of
course, abstain from any of these pleasures, but they are all
poisoned for him by the feeling that they degrade him.
<출판된 불어 번역문>
Si,
dans sa conscience claire, il a depuis longtemps rejeté les
préceptes qu’il a appris sur le genoux de sa mère, son sentiment
de culpabilité peut être enterré profondément dans son
inconscient et n’émerger que lorsqu’il est ivre ou endormi. Ce
sentiment, toutefois, peut être assez puissant pour lui enlever la
saveur de la vie. Au plus profond de lui-même, il accepte encore les
prohibitions de son enfance. Jurer est mal; boire est mal; se montrer
astucieux dans les occupations ordinaires est mal ; et surtout,
suivre l’instinct sexuel est mal. Ce qui ne veut pas dire, bien
sûr, qu’il se prive d’aucun de ces plaisirs, mais leur
jouissance est empoisonnée pour lui par le sentiment qu’ils
l’abaissent.
어릴
적 어머니의 무릎에 앉아 배웠던 도덕적 규칙들은
잊은지 오래 되어서,
이제
그의 죄의식은 잠재의식 속으로 깊이 가라 앉아 술에
취했거나 잠들었을 때에만 나타난다.
비록
이런 죄의식은 잠재의식 속에 갇혀 있기는 하지만
모든 일에 흥미를 잃게 하기에는 충분하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어렸을 때 배운 모든 금지 사항들을
여전히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욕하는
것은 나쁘다,
술
마시는 것은 나쁘다,
업무에서
약삭빠른 태도를 보이는 것도 나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섹스는 가장 나쁘다 따위의 주의 사항들
말이다.
물론
그는 이런 쾌락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자제하지 못한다.
하지만
이런 행동을 하면서 자신이 타락해 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행복을 느낄 수 없게 된다.
2016년 3월 5일 토요일
번역서 오역 문제
금요일 오전 BNU에서 오후에 있을 세미나 자료를 읽었다.
한 30쪽 가량 되는 분량이었는데, 생각보다 개념이 어려워 시간 소요가 많았다. 불어본은 역본(원본은 독어)이라서 내용이 애매할 경우에는 원본이나 다른 역본(가령, 영어본)을 대조해서 읽고 난 뒤 의미를 결정한다. 그런데 어떤 부분을 읽다가 내용이 들어오지 않아서 급기야 원서와 영역본, 불역본을 대조해 보았다.
불어에는 sans 이라고 적혀 있었고, 영어에는 in 이라고 적혀 있었다. 완전히 다른 뜻이다.
영어를 적용해서 읽으면, 그 글은 절대자(신)에 대한 인간의 순응을 말하는 글이 되고, 불어를 적용하면, 절대자(신)에게 항거하는 내용이 된다. 아무리 뜯어 읽어봐도 두 번역본이 화해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독어 원서를 찾았다. 듬성 듬성 찾아서 보니 독어는 gegen을 사용했다.
gegen은 영어의 against, 불어의 contre에 해당한다. 따라서 어떤 것에 대한 긍정보다 부정, 순응보다 저항을 지시하는 말이 된다. 불어 번역이 타당하고, 영어 번역이 오류다.
번역 오류는 때때로 매우 치명적이다. 전치사 하나를 잘 못 번역해서 내용 전체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스펠링을 잘 못 읽어 오역하는 경우(gentle을 gentile로 읽어, 온화한을 이교도로 번역한 책도 있었다), 줄 하나를 건너 뛰고 번역해서 원서가 소설이 되어 버리는 경우 등 겉잡을 수 없다.
실수가 전혀 없을 수 없겠으나, 역자는 이런 실수를 결코 자기 합리화로 연결하면 안 된다. 누군가에게 그 글은 생사를 오고가게 하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나기는 피하면 되지만, 가랑비는 괜찮겠지 하다 어느 새 옷을 다 적시고 만다.
번역팀의 화이팅을 외쳐본다.
Bon weekend !
한 30쪽 가량 되는 분량이었는데, 생각보다 개념이 어려워 시간 소요가 많았다. 불어본은 역본(원본은 독어)이라서 내용이 애매할 경우에는 원본이나 다른 역본(가령, 영어본)을 대조해서 읽고 난 뒤 의미를 결정한다. 그런데 어떤 부분을 읽다가 내용이 들어오지 않아서 급기야 원서와 영역본, 불역본을 대조해 보았다.
불어에는 sans 이라고 적혀 있었고, 영어에는 in 이라고 적혀 있었다. 완전히 다른 뜻이다.
영어를 적용해서 읽으면, 그 글은 절대자(신)에 대한 인간의 순응을 말하는 글이 되고, 불어를 적용하면, 절대자(신)에게 항거하는 내용이 된다. 아무리 뜯어 읽어봐도 두 번역본이 화해되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독어 원서를 찾았다. 듬성 듬성 찾아서 보니 독어는 gegen을 사용했다.
gegen은 영어의 against, 불어의 contre에 해당한다. 따라서 어떤 것에 대한 긍정보다 부정, 순응보다 저항을 지시하는 말이 된다. 불어 번역이 타당하고, 영어 번역이 오류다.
번역 오류는 때때로 매우 치명적이다. 전치사 하나를 잘 못 번역해서 내용 전체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스펠링을 잘 못 읽어 오역하는 경우(gentle을 gentile로 읽어, 온화한을 이교도로 번역한 책도 있었다), 줄 하나를 건너 뛰고 번역해서 원서가 소설이 되어 버리는 경우 등 겉잡을 수 없다.
실수가 전혀 없을 수 없겠으나, 역자는 이런 실수를 결코 자기 합리화로 연결하면 안 된다. 누군가에게 그 글은 생사를 오고가게 하는 치명타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나기는 피하면 되지만, 가랑비는 괜찮겠지 하다 어느 새 옷을 다 적시고 만다.
번역팀의 화이팅을 외쳐본다.
Bon weekend !
에릭과 언어교환(3)
시간이 짧아 2번째 만남을 연속해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상하게 오늘은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아 말이 그다지 원활하게 나오지 않더군요. 언덕이 있으면, 골짜기도 있는 법이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갑니다. 불어 교환은 앞으로 특정 내용을 심도 깊게 대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거 같습니다. 내용이 너무 이리 저리 방대하게 퍼지면, 사용 언어의 한계도 있고, 대화가 겉잡을 수 없게 되기 때문이죠. 차라리 한 가지 주제를 깊게 나누면서 해당 분야 언어나 표현을 익혀 가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습니다. 에릭도 흔쾌히 동의했구요.
한국어 나눔은 직접 만든 교재를 갖고 진행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보통 3가지 구조를 좋아하는 것 같더라구요.^^ 1부는 단어, 2부는 간단한 문법, 3부는 회화로 구성해서 A4 한 장에 만들었습니다. 에릭이 음악 관련 직종이어서 단어는 '책, 악보, 피아노' 같은 단어로 구성했어요. 아마 기억하기 더 수월할 거예요. 문법은 '-을'과 '-를'에 대해서 익혔어요. 다행이 에릭이 원리를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에 와서 제일 체력적으로 힘든 때가 3월과 4월 같네요. 한국에서는 이 때가 제일 팔팔했는데..^^ 확실히 학기말이라 그런가 봅니다. 한 텀을 정리하려니 여기저기서 결과물을 요구하기도 하고, 지도교수도 은근 압력을 행사하고..^^
다음 시간에 볼 때는 좀 튼튼한 몸으로 봐야할 거 같습니다. 지금도 졸립군요.^^
모두 모두 안녕
Bon weekend !
한국어 나눔은 직접 만든 교재를 갖고 진행했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보통 3가지 구조를 좋아하는 것 같더라구요.^^ 1부는 단어, 2부는 간단한 문법, 3부는 회화로 구성해서 A4 한 장에 만들었습니다. 에릭이 음악 관련 직종이어서 단어는 '책, 악보, 피아노' 같은 단어로 구성했어요. 아마 기억하기 더 수월할 거예요. 문법은 '-을'과 '-를'에 대해서 익혔어요. 다행이 에릭이 원리를 이미 잘 알고 있었습니다.
프랑스에 와서 제일 체력적으로 힘든 때가 3월과 4월 같네요. 한국에서는 이 때가 제일 팔팔했는데..^^ 확실히 학기말이라 그런가 봅니다. 한 텀을 정리하려니 여기저기서 결과물을 요구하기도 하고, 지도교수도 은근 압력을 행사하고..^^
다음 시간에 볼 때는 좀 튼튼한 몸으로 봐야할 거 같습니다. 지금도 졸립군요.^^
모두 모두 안녕
Bon weekend !
2016년 3월 1일 화요일
내 탓이오(Mea culpa)?
DIPLOMATIE
Mea culpa du Japon pour les «femmes de réconfort» sud-coréennes
Par Hélène Gully — 28 décembre 2015 à 17:14

Les deux pays asiatiques ont signé ce matin un accord historique. La puissance nippone a reconnu avoir été responsable d'un esclavage sexuel pendant la Seconde Guerre mondiale.
- Mea culpa du Japon pour les «femmes de réconfort» sud-coréennes
L’accord est déjà considéré comme historique. La Corée du Sud et le Japon se sont réconciliés, ce lundi, sur la question délicate des «femmes de réconfort». Le système d’esclavage sexuel avait été mis en place par l’armée japonaise pendant la Seconde Guerre mondiale, lorsque le territoire coréen était une colonie nippone. L’archipel japonais a accepté de dédommager les principales intéressées, même si peu d’entre elles sont encore en vie. 200 000 femmes ont été concernées par ces bordels de l’armée impériale japonaise. Parmi elles, des Coréennes, des Chinoises et des Indonésiennes. En Corée du Sud, il n’en reste plus que 46.
Au delà du milliard de yens (7,6 millions d’euros) versé, le Japon a reconnu explicitement sa responsabilité dans l’élaboration du réseau de prostitution forcée. «Le système des femmes de réconfort [...] a existé du fait de l’implication de l’armée japonaise [...] et le gouvernement japonais est pleinement conscient de sa responsabilité», a déclaré le ministre japonais des Affaires étrangères, Fumio Kishida, à l’issue de discussions à Séoul avec son homologue, Yun Byung-Se.
Implication déjà reconnue en 1993
Cet accord est signé cinquante ans après un premier texte, normalisant les relations entre la Corée du Sud et le Japon. Le 22 juin 1965, les deux protagonistes avaient ratifié des accords bilatéraux rétablissant le lien diplomatique entre Tokyo et Séoul. Les dispositions de l’accord prévoyaient une aide économique japonaise, qui n’était cependant pas explicitée comme étant une réparation des torts causés à la Corée pendant sa colonisation de 1910 à 1945. «Il y a eu la reconnaissance de la déportation de 2 millions de personnes, mais stipulant l’impossibilité de toute réclamation individuelle des indemnités après ces accords», précise Christine Lévy, maître de conférence à l’Université de Bordeaux-Montaigne, dans un entretien accordé au site Asialyst. «Dans cet accord sur le nombre des déportés, rien n’est dit sur les femmes de réconfort, alors qu’elles en faisaient partie», ajoute l’universitaire. Depuis, le Japon considérait que le sujet était clos.
Sur un tabou, le mea culpa est toujours difficile à obtenir. Yohei Kono, chef du cabinet du Premier ministre nippon en 1993, avait reconnu l’implication plus ou moins directe de l’armée japonaise dans la création de ces «stations de réconfort». Malgré ces efforts, de franches excuses n’étaient pas encore de mise. D’ailleurs, Shinzo Abe, l’actuel Premier ministre japonais, estimait en 2007 qu'«il n’y a pas d’évidence pour prouver qu’il y ait eu de la coercition» affirmant que les femmes de réconfort étaient des prostituées consentantes. Des déclarations éloquentes quant au malaise du Japon face à son passé.
Pressions de la société civile japonaise
De l’autre côté, les revendications coréennes ne se sont pas non plus essouflées. Arrivée au pouvoir en février 2013, la présidente sud-coréenne Park Geun-hye a qualifié le différend sur les «femmes de réconfort» comme étant le «plus grand obstacle» à l’amélioration des relations diplomatiques avec le Japon. Récemment, des pressions de la société civile japonaise ont émergé pour désamorcer les tensions et inciter le gouvernement à reconnaître sa culpabilité. En mai, avant le discours de Shinzo Abe sur la commémoration de la capitulation du 15 août 1945, des centaines d’historiens japonais ont publié une déclaration encourageant le pays à faire face «honnêtement» aux souffrances causées aux «femmes de réconfort». Le texte précisait que «les victimes ont été soumises non seulement au recrutement forcé mais aussi à des conditions d’esclavage sexuel qui ont violé leurs droits fondamentaux».
Dans un communiqué, Hiroka Shoji d’Amnesty International tempère l’enthousiasme ambiant : «Les femmes, qui étaient absentes des négociations, ne doivent pas être oubliées dans cet accord qui sent plus la politique que la justice.» En effet, certains attribuent la signature de l’accord à la pression exercée par la Maison Blanche (grand allié des deux puissances asiatiques) sur Park Geun-hye pour qu’elle soit moins sévère envers Tokyo. Kan Kimura, chercheur à l’université japonaise de Kobé, renchérit : «C’est un accord entre deux gouvernements, pas entre deux sociétés. Toute la question est de savoir si la société sud-coréenne l’acceptera.»
Hélène Gully남한 "위안부"를 향한 일본의 ‘내 탓이오’
엘렌 귈리(2015년 12월 28일자 리베라시옹 기사)
오늘 아침 아시아 두 국가가 역사적 합의문에 서명했다. 일본 정부는 2차대전 동안 벌어진 성 노예 문제에 책임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협의문은 이미 역사적인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번 월요일, 남한과 일본은 "위안부" 라는 까다로운 문제에 서로 화합했다. 성 노예 체제는 2차대전 기간, 한국 영토가 일본 식민지였을 당시 일본군을 통해 설치되었다. 비록 소수 인원이 생존해 있음에도, 일본 열도는 [위안부 문제에] 관련된 주요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조치를 수용했다. 일본 제국주의 부대 위안소에 20만명에 달하는 여성을 모았다. 이들은 [주로] 한국인, 중국인, 인도네시아인이었다. 남한에 남아 있는 생존자는 불과 46명이다.
10억엔(7,600만 유로) 이상을 배상하는 일본은 강제 매춘망 조직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분명히 인정했다. 일본 외교부 장관 기시다 후미오는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합의문을 통해 "위안부 체제는 […] 일본군과 연루된 사건이었다. 또한 일본 정부는 그 책임에 대해 충분히 통감한다" 라고 발표했다.
1993년 이미 인정한 사건
이 합의문은 남한과 일본 간 관계를 정상화하려는 최초 문서 이후 50년 만에 서명된 문서다. 1965년 6월 22일, 양국은 서울-도쿄간 외교 관계 구축에 대한 합의문을 비준했다. 이것은 일본의 경제 원조를 예상한 합의문이었으나, 1910년에서 1945년까지 일제 식민지 기간 한국에 피해를 입힌 부분에 대한 보상으로 명시화되지 못했다. 보르도-몽테뉴 대학교 부교수로 재직 중인 크리스틴 레비는 한 대담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합의문에는] 200만에 달하는 강제징용을 인정하지만, 합의문 이후 보상금에 대한 개인적 항변의 목소리를 모두 담아내기 불가능하다는 점이 명문화되었다." (http:// asialyst.com/…/femmes-de-reconfort-la-plaie-toujours-beant…/). 이에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보상금에 관한 내용을 명시한 이 합의문에는 위안부 여성이 큰 부분을 차지함에도 불구하고, 그 문제에 대해 일언 반구도 없다." 터부시하는 문제를 놓아두고, ‘내 탓이오’(mea culpa)라고 말하는 일은 언제나 목적을 이루는 데 장애가 된다. 1993년 일본 내각 수상인 고노 요헤이는 "위안소" 건설에 다소간 일본군의 직접적 관여가 있었음을 인정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사과는 여전히 통용되지 않았다. 더욱이 현 일본 수상 아베 신조는 지난 2007년 위안부 여성들은 자발적 매춘에 동의한 이들이라 주장하며 "강제연행이 있었는지 입증할 증거가 없다"라고 평했다. 일본의 불만에 대해 설득력 있는 선언문들이 일본 자신의 과거와 마주한다.
일본 시민사회의 압박
다른 측면에서 보자. 한국의 요구사항도 정체되지 않았다. 2013년 2월 집권한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과의 외교 관계 개선에 "가장 큰 장애물"로 "위안부" 문제를 둘러 싼 분쟁이라고 평가했다. 최근 긴장관계를 완화하고 일본 정부가 범죄를 시인할 것을 부추기는 일본 시민사회의 압력이 일어났다. 아베 신조의 1945년 8월 15일 항복 기념 담화문 이전인 5월, 일부 일본 역사학자들은 "위안부 여성"에게 가한 고통에 "정직하게" 마주하는 나라를 독려하는 선언문을 공표했다. 이 선언문은 다음과 같이 밝혔다. "희생자들은 강제 징용뿐 아니라 자신의 기본권을 훼손당한 성 노예라는 조건에 예속되었다."
한 공식 성명서에서, 국제 앰네스티 소속 히로카 쇼지는 주변의 열광주의를 다음과 같이 완화시킨다. "정의보다 정치 냄새가 진동하는 이 합의문에서 결코 잊혀져서는 안 되는 이들은 바로 협상 테이블에 없었던 [피해] 여성들이다." 일각에서는 합의문 서명을 백악관(한일 양국 정권의 상위 동맹국)이 도쿄를 향한 눈초리를 누그러 뜨리기 위해 박근혜에게 가한 압력으로 보기도 한다. 일본 고베대학교 연구교수 기무라 칸은 한 술 더 뜬다. "이것은 한국 사회와 일본 사회 간에 맺은 합의문이 아니라, 양국 정부 간에 맺은 합의문이다. 과연 남한 사회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가 문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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