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월 29일 금요일

수진씨 송별회

BNU 카페테리아에서 사회토론모임을 하던 우리에게 포획당한 <?>  수진씨.
두달 동안 번역모임 아뜰리에에서 항상 재미있고 훌륭한 번역을 하며 큰 역할을 해준 
우리의 수진씨가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화요일 오전, 여느때와 다름없이 BNU salle de travaille 에서 모임을 시작했습니다. 
이날이 우리 수진씨 마지막 날. 

이날 카메라를 가지고 가려 했지만 아기를 들쳐업은 애엄마는 
까마귀 고기를 홀랑 먹고 카메라는 그대로 두고 집을 나선 탓에 
아이퐁의 그다지 좋지 않은 화질과 
애 안고 찍어 구도들이 이상한 사진들이 나갑니다. 


ㅜㅜ






즐거운 번역모임을 끝내고



은주언니가 수진씨에게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큰 아쉬움이 묻어나오던 순간.



우리 수진씨 선물 
생각지도 않게 선물을 받게 되어 어리둥절. ㅎ





아이고..황송한 표정을 감출수 없던 수진씨



무얼까요 


선물 포장도 정성들여 뜯던 수진씨. 


터프한 누님들은 
저렇게 양팔을 끼고 감시.

그냥 뜯어보라면서..ㅋㅋㅋ






그래도 조심스럽게..

ㅎㅎㅎㅎ





두근두근




뭐야 뭐야 ?







불어책과 시디 !!




책과 시디 선물 받는거 
아주 좋아한다며 
입이 귀에 걸린 수진씨.




수진씨, 한국 돌아가도 불어 공부 열심히 해용 ^^ 


우리 마지막 날이니,

맛있는거 먹으러 갈까요?





육회가 먹고싶다던 수진씨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여 
인터넷 검색끝에 찾은 레스토랑은 자리가 없어서 못가고 
비슷한걸 먹을수 있는 Bistro Romain에 갔습니다. 

좀 늦은 점심 식사.

아..
배고파 







너무 배고파서 표정관리 잘 안되기 시작됩니다. 
다들 굳어있....





그 중 한명만 아무렇지도 않은 사람. 








쨘 !!!

맘마는 이미 먹었으니 난 괜찮지용 ㅎㅎㅎㅎ





드디어 나온 식사 !



까르파치오를 시킨 수진씨. 

성헌오빠의 섬세하고 자상한 손놀림.

이렇게 먹는거야..


정현언니는 이 자상함을 매일 느끼겠군요 !!






아주 진지한 얼굴로 소스 마구 뿌려줍니다. 






다들 식사를 맛있게 먹고나서
또 디저트 까지 먹었지요.





이렇게 맛있게 먹고 
송별회 끝 ! 

잘가요 수진씨, 

조만간 우리 또 프랑스에서 봅시다. 
곧 다시 와야해요 
아멜리 노통 책과 음악 시디,
그리고 
번역모임 계속 활동해서 

다음에 볼땐 원어민 불어로 대화 하는걸로 ??


ㅎㅎㅎㅎㅎㅎ


2016년 1월 27일 수요일

하루에 한줄: 캉디드 / 볼테르



CHAPITRE SECOND



Deux hommes habillés de bleu le remarquèrent : « Camarade, dit l’un, voilà un jeun homme très bien fait, et qui a la taille requise. » Ils s’avancèrent vers Candide, et le prièrent à dîner très civilement. 

2016년 1월 23일 토요일

하루에 한줄: 캉디드 / 볼테르


CHAPITRE SECOND



Candide, tout transi, se traîna le lendemain vers la ville voisine, qui s’appelle Valdberghoff-trarbk-dikdorff, n’ayant point d’argent, mourant de faim, et de lassitude. 

2016년 1월 22일 금요일

하루에 한줄: 캉디드 / 볼테르

CHAPITRE SECOND

CE QUE DEVINT CANDIDE PARMI LES BULGARES



Candide, chassé du paradis terrestre, marcha longtemps sans savoir où, pleurant, levant les yeux au ciel, les tournant souvent vers le plus beau des châteaux, qui renfermait la plus belle des baronnets, il se coucha sans souper au milieu des champs entre  deux sillons ; la neige tombait à gros flocons.

2016년 1월 20일 수요일

하루에 한줄: 캉디드 / 볼테르

Candide ou l’optimisme.

Chapitre premier



Monsieur le baron de Thunder-ten-tronckh passa auprès du paravent, et, voyant cette cause et cet effet, chassa Candide du château à grands coups de pied dans le derrière ; Cunégonde s’évanouit : elle fut souffletée par madame la baronne dès qu’elle fut revenue à elle-même ; et tout fut consterné dans le plus beau et le plus agréable des châteaux possibles. 



캉디드... 정말 운도 없이 딱 걸렸네요. 한번 손 잡아서 두근두근한걸.. 에고.. 


Chapitre premier 는 끝났어요. 저의 머릿속 지우개 때문인지, 원래 금붕어 기억력이라 그런지 ㅠㅠ  금요일 이후에 까맣게 잊고 있다가 갑자기 생각나 캉디드 씁니다. ㅎㅎㅎ 
암튼....
오늘 밤 두번째 들어갑니다. ^^;; 

언어수업 기여공간 / Platefome d'échanges multilangues


번역연구살롱에서 "언어수업 기여공간"을 마련할 예정입니다. 
자세한 사항을 조만간 공지해 드리겠습니다. ^^

2016년 1월 19일 화요일

번역연습 3 / 2016.01.19

그러나 대부분은 나 자신에 대해 관심을 덜 갖는데서 온것이다. 청교도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나 또한 내 죄악과 어리석음,불완전함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습관이 있었다. 나는 정말로 보잘것없는 놈처럼 보였다. 조금씩 조금씩 나 자신과 나의 결점에 대해서 무관심해 지는 법을 배웠고, 점점더 외부적인것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세계의 상황, 지식에 관한 다양한 분과들, 내가 애정을 느끼는 사람들에 대해서말이다. 외부에 대한 관심은 각자에게 고통을 가져올 수도 있다. 세계가 전쟁에 말려들수도 있고,지식이 기대치에 다다르지 못할수도 있고, 친구들이 죽을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종류의 고통은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에 비해서 생의 근본적인 질을 파괴하지는 않는다. 모든 외부적인 관심은 어떤 활동을 유발한다.이것은  그 관심이 지속되는 한 권태에 대항할 수 있는 완벽한 방편이되어준다. 반면 자기중심적인 관심은 아무 활동도 점진적으로 끌어내지 못한다. 일기를 쓴다던지, 정신분석을 받는든지, 수도사가 되는것, 이런것들이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가져올 수 있는 결과들이다. 그러나 수도사마저도 수도원의 관례들이 그 자신의 영혼을 잊어버리게 해주지 못하면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종교에 기여하면서 얻는 행복은 거리청소부를 하면서도 얻을 수 있을것이다. 자신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다른방법으로 치료하기엔 너무깊은 불행한 사람들에게는, 외부적인 규율만이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번역 원문 / 2016.01.19

영어 원문

But very largely it is due to a diminishing preoccupation with myself. Like others who had a Puritan education, I had the habit of meditating on my sins, follies, and shortcomings. I seemed to myself- no doutbt justly- a miserable specimen. Gradually I learned to be indifferent to myself and my deficiencies ; I came to center my attention increasingly upon external objects : the state of the world, various branches of knowledge, individuals for whom I felt affection. External interests, it is true, bring each its own possiblility of pain : the world may be plunged in war, knowledge in some direction may be hard to achieve, friends may die. But pains of these kinds do not destory the essential quality of life, as do those that spring from disgust with self. And every external interest inspires some activity which, so long as the interest remains alive, is a complete preventive of ennui. Interest in oneself, on the contrary, leads to no activity of a progressive kind. It may lead to the keeping of a diary, to getting psychoanalyzed, or perhaps to becoming a monk. But the monk will not be happy until the routine of the monastery has made him forget his own soul. The happiness which he attributes to religion he could have obtained from becoming a crossing-sweeper, provided he were compelled to remain one. External discipline is the only road to hapiness for those unfortunates whose self-absorption is too profound to be cured in any other way.


출판된 불어 번역문

Mais, en grand partie, cela est dû à un intérêt décroissant dans ma propre personne. Comme tant d'autres qui ont eu une éducation puritaine, j'avais l'habitude de méditer sur mes péchés, mes folies et mes imperfections. Je me paraissais - certainement à juste titre - un type misérable. Peu à peu, j'appris à manifester de l'indifférence à l'égard de moi-même et de mes défauts ;  je vins à concentrer mon attention de plus en plus sur les choses extérieures : l'état du monde, les diverses branches du savoir, les personnes pour lesquelles je ressentais de l'affection. Les intérêts extérieurs, je l'avoue, apportent chacun leurs propres possibilités de douleur : le monde peut être plongé dans la guerre ; le savoir, dans une direction donnée, peut être dur à atteindre ;  les amis peuvent mourir. Mais les chagrins de cette sorte ne détruisent pas la qualité essentielle de la vie comme le font ceux qui découlent du dégoût de soi-même. Et tout intérêt extérieur incite à quelque activité, qui, aussi longtemps que l'intérêt demeure vivant, est un préventif complet contre l'ennui. Un intérêt égocentrique, au contraire, ne mène à aucune activité progressive. Écrire son journal, se faire psychanalyser ou peut-être devenir moine, tels sont les résultats possibles d'une telle attitude. Mais le moine ne sera pas heureux tant que la routine du monastère ne saura lui faire oublier sa propre âme. Le bonheur qu'il attribue à la religion, il aurait pu l'atteindre en se faisant balayeur de rues pourvu qu'il fût obligé de le rester. Une discipline extérieure est la seule voie au bonheur pour ces infortunés dont l'intérêt excessif en eux-mêmes est trop profond pour être guéri d'une autre manière.

출판된 한글 번역문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삶을 즐기게 된 주된 비결은 자신에 대한 집착을 줄였다는 데 있다. 청교도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흔히 그렇듯이, 나 또한 자신의 죄와 어리석음, 결점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버릇이 있었다. 그랬으니 나 자신을 불행한 괴짜로 여겼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차차 자신과 자신의 결점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법을 배워나갔다. 나는 외부의 대상들, 즉 세상 돌아가는것, 여러 분야의 지식, 그리고 내가 호감을 느끼는 사람들에 대해서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외부적인 대상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역시 그 나름대로 고통을 부를 수 있다. 세상이 전쟁의 구렁텅이로 떨어지기도 하고, 어떤 분야에서 지식을 습득하는데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친구들이 죽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고통은 자신에 대한 혐오로 생기는 고통과는 달리 삶의 본질적인 부분까지 파괴하지는 않는다. 외부에 대한 관심은 어떤 활동을 할 마음을 불러일으키는데, 그 관심이 살아 있는 한 사람은 결코 권태를 느끼지 않는다.
하지만 자신에 대한 관심은 어떤 적극적인 활동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기껏해야 일기 쓰기에 매달린다거나, 정신분석을 받으로 정신과에 다닌다거나, 승려가 되거나 할 뿐이다. 하지만 승려가 된 사람도 규칙적인 수도 생활에 쫓겨 자신의 영혼을 잊을 수 있어야 비로소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승려가 종교에 귀의한 덕분에 누리고 있다고 믿는 행복은, 그가 어쩔 수 없어서 도로 청소원이 되었더라도 누릴 수 있었던 행복에 불과하다. 지나치게 자기 자신에게 몰입하는 바람에 불행해진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외부적인 훈련뿐이다.

2016년 1월 18일 월요일

접속어를 써야하나 말아야 하나?

그리고, 그런데, 그러나, 그래서, 또는, 왜냐하면, 그렇기 때문에, 더군다나, 게다가, 그런다음 .... 등등. 글을 쓸 때 이런 접속어들을 쓸때가 많은것 같습니다. 특히나 논리적인 글을 쓸때는 논리 흐름의 구조를 명확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것 같구요. 그러나 문학적인 글을 쓸때는 저놈들을 최대한 적게쓰기를 권장하네요. 그러면 문장이 더 가벼워지고 탄력이 생긴답니다. 접속어를 자꾸 쓰는 것은 글의 결점을 숨기기 위한 꼼수라고도 합니다. ^^ ( 고등학교때 다 배운건가요?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
결국 논리적인 글이든 문학적인 글이든 마찬가지 인것 같습니다. 앗, 여기까지 쓴 이 짧은 글에서 접속어가 벌써 3개나 됩니다. 글쓰기 하수라는 증거입니다. ㅋㅋㅋ.

불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불어 글쓰기를 할때, 접속어들이 글쓸때 꼭 필요한 핵심어휘라도 되는양 열심히 정리하고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불어문장을 잘 못쓰니까, 생각이라도 똑바로 전달됬으면 하는 마음에서 단락마다 꼭 접속어를 집어넣었던 것 같아요. 그걸 써야 불어실력이 있어보이기도 했고요. 아직도 글을 잘 못쓰는 입장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는데, 여러분들 생각은 어떤가요?.
다음 발췌한 글을 한번 읽어보세요. ^^


Je supprime les termes de liaison.

On s'efforcera de mettre le moins possible de conjonctions de coordination : mais; ou, et, donc, or, ni, car, en outre, de plus, d'ailleurs, puis, ensuite, cependant. La liaison peut souvent être donnée par la construction, l'enchaînement : la conjonction de coordination est la plupart du temps un cache-misère. Cette omission d'un terme de liaison entre deux membres d'une phrase ou deux phrases (par juxtaposition) allège et muscle à la fois ; une vraie sinécure pour une écriture un peu mollassonne :

"La nuit tombait, on retira le vélarium." (Flaubert)  


원문발췌 : Dane Cuypers, Questiion de style, Manuel d’écriture, CFPJ, 2011 

2016년 1월 17일 일요일

한글 번역문 / 2016.01.02.

한글 번역문(p16 – 17)

  글에서는 문명국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날마다 겪고 있는 일상적인 불행에 대해 다룰 것이다. 분명한 외적 원인이 없으니 달아날 길이 없는 같고, 달아날 길을 찾을 없기 때문에 더욱 참아내기 힘든 불행을 치유할 방법을 제시하는 글의 목적이 있다. 이런 불행은 대부분 세계에 대한 그릇된 견해, 잘못된 윤리와 생활습관에서 비롯되는데, 이런 요인들은 인간이나 짐승이 누리는 행복이 근본적으로 의존하기 마련인 자연스런 열정과 욕구를 짓뭉갠다. 이런 불행은 개인의 힘으로 좌우할 있다. 나는 보통의 운으로도 행복을 얻을 있는 가지 변화의 방법을 제안할 작정이다.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행복의 철학을 소개하기 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잠깐 하겠다나는 선천적으로 행복한 사람이 아니었다. 어렸을 나는 세상에 지친 몸에 죄로 짐을 지고라는 찬송가를 가장 좋아했다. 나이 다섯 , 만일 일흔 살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이제 겨우 일생의 14분의 1 견딘 셈이니, 앞에 길게 뻗어 있는 인생의 지루함은 얼마나 견디기 어려울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사춘기 때는 삶을 증오해서 자살할 생각을 품고 있었지만, 수학에 대해서 알고 싶다는 욕구 때문에 자살 충동을 자제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삶을 즐기고 있다. 해를 맞을 때마다 나의 삶은 점점 즐거워질 것이다. 이렇게 삶을 즐기게 비결은 내가 가장 갈망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내서 대부분에 손에 넣었고, 본질적으로 이룰 없는 것들에 대해서는 깨끗하게 단념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나는 어떤 것들에 대해 의심의 여지가 없이 명확한 지식을 얻고자 하는 욕심 따위 단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