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대부분은 나 자신에 대해 관심을 덜 갖는데서 온것이다. 청교도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다 그렇듯이, 나 또한 내 죄악과 어리석음,불완전함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는 습관이 있었다. 나는 정말로 보잘것없는 놈처럼 보였다. 조금씩 조금씩 나 자신과 나의 결점에 대해서 무관심해 지는 법을 배웠고, 점점더 외부적인것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세계의 상황, 지식에 관한 다양한 분과들, 내가 애정을 느끼는 사람들에 대해서말이다. 외부에 대한 관심은 각자에게 고통을 가져올 수도 있다. 세계가 전쟁에 말려들수도 있고,지식이 기대치에 다다르지 못할수도 있고, 친구들이 죽을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종류의 고통은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에 비해서 생의 근본적인 질을 파괴하지는 않는다. 모든 외부적인 관심은 어떤 활동을 유발한다.이것은 그 관심이 지속되는 한 권태에 대항할 수 있는 완벽한 방편이되어준다. 반면 자기중심적인 관심은 아무 활동도 점진적으로 끌어내지 못한다. 일기를 쓴다던지, 정신분석을 받는든지, 수도사가 되는것, 이런것들이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가져올 수 있는 결과들이다. 그러나 수도사마저도 수도원의 관례들이 그 자신의 영혼을 잊어버리게 해주지 못하면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종교에 기여하면서 얻는 행복은 거리청소부를 하면서도 얻을 수 있을것이다. 자신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다른방법으로 치료하기엔 너무깊은 불행한 사람들에게는, 외부적인 규율만이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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